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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옛 가요/★49~이전(측음기)

싱싱싱(Sing sing sing)/손목인(1939)SP

by 예당피싱 2008. 10. 11.
♣옹달샘 추억의 옛노래♣

 

 

    ◐싱 싱 싱(번안곡)◑ ★ 원 곡 : 베니굿맨 ★ 작 곡 : 루이스 프리마 ★ 제작사및 년도: 1939 리갈레코드 ★ 작 사 : 문예부 ★ 편 곡 : 북부양일(일본) ★ 연 주 : 리갈 관현악 악단 ★ 작곡가 손목인(1913~1999) 경남 진주 출생 본명은 손득렬(孫得烈). 일제강점기에 〈목포의 눈물〉·〈타향살이〉 등 민족의 설움을 담은 명가요를 남긴 작곡가이다. 서울 중동학교 시절 기독교청년회(YMCA) 회원이 되어 음악을 접한 뒤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2년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서 연주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대중가요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하던 오케레코드사의 전속 작곡가가 되면서 음악계와 인연을 맺었다. 1934년 신인 가수 고복수가 부른 〈타향살이〉와 〈이원애곡 梨園哀曲〉을 작곡해 큰 주목을 받았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 〈타향살이〉는 1930년대 후반 가요 황금기의 시작을 알린 노래로 일컬어진다. 이 노래로 고복수가 일약 스타가 되자 그는 계속해서 고복수를 위해 〈사막의 한〉· 〈짝사랑〉·〈휘파람〉·〈꿈길 천리〉·〈항구야 잘 있거라〉 등을 작곡했다. 1935년에는 우리 가요사의 기념비적인 노래 〈목포의 눈물〉을 발표했다. 이난영이 노래한 이 곡은 오케레코드사가 조선일보사와 제휴해 전국 6대 도시의 애향가 가사를 공모해서 당선작에 곡을 붙인 것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5만 매를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인기 작곡가가 된 그는 1936년 일본 고등음악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귀국 후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스윙 재즈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케레코드사 전속의 CMC밴드를 한국 최초의 스윙 밴드로 키워내고 손안드레라는 이름으로 재즈송도 녹음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난영의 〈항구의 붉은 소매〉·〈연락선 비가〉, 남인수의 〈애수의 제물포〉·〈유랑마차〉·〈울리는 만주선〉 등 인기곡을 내놓았다. 또 잠시 콜럼비아레코드사의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뗏목 이천리〉 등을 작곡했다. 1940년 손목인 악단을 조직해 중국과 일본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무대 공연에 힘을 쏟기도 했다. 8·15해방과 함께 CMC밴드를 대편성악단으로 확대 편성해 쇼 무대를 더욱 빛냈으며, 1947년 국영방송인 서울중앙방송국(HLKA)의 전속 음악 담당자가 되었다. 1951년 영화음악 더빙을 위해 일본으로 밀입국했다가 1957년 귀국하기까지 영화 주제가를 작곡하면서 일본에 머물렀다. 귀국 후에도 〈사랑의 기로〉·〈지옥화〉 등 영화음악을 작곡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67년 미국으로 이주해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서울과 도쿄를 왕래하다 1982년 귀국했다. 1987년 손목인 음악 센터를 설립하고 동료 작곡가 길옥윤·박시춘·박춘석·반야월 등과 친밀한 교유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 작곡계를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1964)와 한국가요작가협회(1989)를 만드는 등 음악인들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섰다. 도서출판 한국문화 발행인(1990), 한중음악교류협의회장(1993)을 역임했다. 자신이 작곡한 작품의 저작권 문제로 도쿄를 방문했다가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숨졌다. 1987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자료출저 : 다음 백과사전 ★편집:맑은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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