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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별(가나다순)♪/◐이장희(完)

겨울 이야기 / 이장희 (1973)

by 예당피싱 2019. 2. 17.

 
♣ 겨울 이야기 / 이장희 ♣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언제든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경아의 화난
 표정을 본적이 있을까요?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경아의 웃음을 보며 얼핏
 그애가 치약거품을 물고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아이스크림을
 핥는 풍요한 그 애의 눈빛을 보고 싶다는
 나의 자그마한 소망은 이상하게도
 추위를 잘 타는 그애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이른 겨울 이었고 우리가 헤어진 것은
 늦은 겨울 이었으니 우리는 발가벗은
 두 나목처럼 온통 겨울에 열린 쓸쓸한
 파시장을 종일토록 헤매인 두 마리의 길 잃은
 오리새끼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거리는
 얼어붙어 쌩쌩이며 찬 회색의 겨울바람을
 겨우 내내 불어 재꼈으나 나는 여느 때의
 겨울처럼 발이 시려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경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언제든
 추워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라는 것은 기차를
 타고 가서 저 이름모를 역에 내렸을 때나
 맞을 수 있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빙하가 깔린 시베리아의
 역사에서 만난 길 잃은 한 쌍의 피난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열아홉살의 뜨거운 체온 뿐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외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체온엔
 경아의 체온이, 경아의 체온엔 나의 체온이
 합쳐져서 그 주위만큼의 추위를 녹이였기
 때문입니다. 경아는 내게 너무 황홀한
 여인이었습니다. 경아는 그 긴 겨울의
 골목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외투도 없이
 내 곁을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헤어졌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이장희 작사/미 상 작곡- 

★ 앨범명 : 영 페스티발 Vol.4 [헝크러진 내 머리]
★ 발매 및 제작사 : (1973) 유니버샬 K-APPLE-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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